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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22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10장 멀고 먼 황천길(간난할멈의 장례날)

#간난할멈의 장례날


간난할멈의 장례날은 쾌청했다.

나이 어려 굴건제복(屈巾祭服) 대신 천태를 두르고 도포 입은 영만이를 위시하여 두만아비와 두만이, 최참판댁 사내종들은 두건을 썼고 두만어미, 계집종들은 먹댕기에 북포 치마를 입었다. 바우할아범 장사에 비하면 여간 융숭하지가 않았다. 음식도 많이 차려 마을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으며 마을 상여를 빌려오긴 했으나 만장이 여러 개 바람에 나부꼈고 자식 없는 종 신분의 일생이니 호상이랄 수는 없지만 윤씨부인이 죽은 사람을 깍듯이 대접한 만큼 꽤 큰 장례식이었다. 간난할멈은 살 만치 살았었고 뜻밖의 죽음이 아니었으므로 그를 위해 뜨겁게 울어줄 사람은 별로 없었으나 그러나 열두 상두꾼이 멘 상여, 상두채에 올라서서 앞소리를 하는 서서방의 가락은 여전히 아낙들을 울려놓았다. 제 설움에 울고 인간사가 서러워 울고 창자를 끊는 것같이 가락과 구절이 굽이쳐 넘어가고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는 상두가에 눈물을 흘린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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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21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9장 과거의 거울에 비친 풍경(윤씨부인의 과거)


#문의원의 장암 선생 비판

‘양반의 폐단이 골수까지 사무친 위인이오. 제아무리 학식이 깊은들 무슨 소용이겠소. 사람을 금수로 보는 편협한 언행이 모범은 될 수 없지요. 학문은 자신의 길을 찾음과 함께 백성에게도 옳은 길을 이끌어주는 데 그 근본이 있거늘 청풍당석에 홀로 앉아 어느 누구를 논박한다 말씀이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장암 선생의 염세적인 비관론

‘칼을 주어보게. 우중들은 모두 사람백정이 될 것이네. 오므렸던 발톱을 펴는 야수와 같은 본성을 드러낼 뿐이지.’

‘사명감이라는 것도 식자깨나 배운 놈의 허울 좋은 겉옷이요, 헤치고 보면 크게 격차 나는 게 아니지. 사람의 존엄이란 능동에 있는 게 아니며 이치에 대한 피동에서 지켜져나가는 게야.’

‘학문이 진리를 찾는 것이기는 하되 반드시 진리가 이롭고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네. 학문하는 태도 역시 이롭고 보탬이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장이 바치*에 떨어지고 마는 법, 규격에 맞춰 틀에 끼울 것이 못 되지. 진리는 만인이 함께 가질 물건은 아니거든. 이 손 저 손 넘어가는 동안 쇠퇴되고 시체가 되고 썩어버리고 마른 허울만 남고 종국에는 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만인을 호령하게 되는데 그것에 영합되면 학자는 학자가 아닌 동시 우중과 위정자들의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지.’

장암은 염세적인 비관론자라 할 수 있고 학문의 순수를 망집하는 현실에의 부정자라 할 수 있고 성악설에 근거를 둔 사상은 인간 멸시, 편협과 오만, 냉소,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편중된 듯 보였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윤씨부인과 최치수의 대립

‘말씀하십시오. 어머님의 비밀을 말씀하십시오.’

‘이놈! 생지옥에 떨어진 어미 꼴이 그렇게도 보고 싶으냐?’

“꼭히 가야 하겠느냐?”

“예.”

치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살생은 죄악이니라.”

윤씨부인은 눈을 감았다.

“하오나 심신단련에는 좋을 듯하여…….”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윤씨부인의 눈물

윤씨는 김개주가 전주 감영에서 효수되었다는 말을 문의원으로부터 들었을 때, 무쇠 같은 이 여인의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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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20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8장 행패(김평산 vs. 막딸네)


얼굴빛이 달라진 평산은 몸을 돌렸다.

“어딜 가시오?”

평산은 대꾸 없이 천천히 발을 떼놓았다.

‘목을 쳐 죽일 년!’

걸쳐서 하는 말과 직통으로 하는 말의 차이를 평산은 똑똑히 구별한다. 어느 놈이 했느냐 하며 별의별 욕설을 퍼부었을 때는 오불관언이지만 네놈이 도둑이다 했다면 가만있을 수 없다.

‘사지를 찢어 죽일 년!’

자식과 마누라를 거쳐서 온 모욕이었기에―콩밭에서 콩을 훔치고 안 훔친 그것은 문제 밖이다―권위의식은 한층 도도해졌던 것이다. 무슨 짓을 했든지 면대하여 따졌다면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양반과 상놈 사이에 시비는 성립될 수 없다. 응징이 있을 뿐이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막딸네의 오해가 함안댁이 큰 아들 거복이를 체벌하고, 이를 본 평산이 모욕을 느껴 막딸네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함.

비록 양반 출신이라 하지만 대화로 풀어갈 일이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과부로 사는 막딸네의 설움과 궁핍함과 오해가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야기함.
물론 남의 집 먹거리를 훔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칠성의 아내 임이네도 양심의 가책은 느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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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9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7장 암시(잔인한 보복)

‘벌레 같은 놈들! 네놈들이 세상을 삐뚜룸하게 보면 어쩔 테냐? 시궁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썩어 없어질 놈들이.’

조준구는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나 한조에 대한 이때의 미움은 후일 잔인한 보복을 낳게 되리라는 것은 조준구 자신도 예측치 못하였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조준구와 한조는 서로 어떻게 얽히게 될까?
조준구도 예측 못한 보복 사건의 전개는?


“왜 몰랐겠소. 사내 오기도 있고, 그래 첩을 두게 되었는데 그 계집이 요사하고 간악했던 모양이오.”

“흔히 그렇지요.”

“살림은 탐이 나고 이미 딴 사내를 보고 난 계집은 본댁과 달라 사내한테서 자손 바라기 어려움을 깨달은 모양이오.”

“하하아…….”

“결국 다른 사내를 보아 애를 밴 계집은 남편을 살해했지요.”

“저런!”

“흔히 있는 얘길 게요.”

“아, 그래 그러고도 천벌을 받지 않고 무사했더란 말씀이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오. 지나치게 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생기는 범죄지요. 무후한 것을 대죄라 생각하는 풍습도 달라져야 할 게고,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귀신이 더 판을 치는 그따위 풍습도 없어지지 않고는, 서학 하는 사람들을 학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당을 없이했다는 데 원인이 있고, 나라 자체가 그따위 고루한 것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뭐가 되겠소.”

조준구는 평소 즐겨하는 식으로 시국 얘기며 나라 형편을 지루하게 논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거의 건성인 듯싶었다.

평산은 긴장한 눈초리로 준구의 입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상대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조준구의 심중을 헤아려보려고 평산은 신경의 날을 세우고 사방에다 촉수를 펴며 더듬는 것이었다.

‘이자가 냄새를 맡고 하는 얘길까? 우연히 한 말일까? 냄새를 맡았다면 그렇게 하라는 뜻인가? 음, 그럴 리 없지. 남의 심중을 알 턱이 있나,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구. 음, 결국 다른 사내를 보아 애를 밴 계집은 남편을 살해했다구?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구?’

백성들이 눈을 떠야, 어리석은 자들. 무당이 판을 치고 개인 문제에 불과한 선영봉사를 조정에서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조준구는 김평산의 계략을 눈치채고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김평산의 심정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 조준구

몰락양반의 후예로 최치수의 재종형. 작가가 지적한『토지』에서의 가장 속악한 인물이다. 기질적으로 간교하고 음험하며 교만하다. 먼 친척인 최참판가에 유하면서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를 넌지시 암시하여 최치수 살해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윤씨부인마저 죽자 손쉽게 재산을 차지한다.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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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8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6장 음양의 이치(강포수의 귀녀 사랑)


누가 가라고 멱살이라도 잡는 것처럼 강포수는 당황했다. 그런 모습이 평산에게 기이한 감을 주기는 했으나 귀녀 때문이라는 것은 알 턱이 없다.

“옛날에 말입니다.”

강포수의 눈이 행복한 듯 슬픈 듯 흔들렸다.

“요새는 와 그런지 그 생각이 문뜩문뜩 나누마요. 그때 나는 고라니 한 마리를 잡았는데 말입니다. 그기이 암놈이었소. 거 참, 희한한 일이었소. 다음 날 고라니를 잡은 자리를 지나갔다 말입니다. 그랬는데 암놈 피가 흐른 자리에 수놈 한 마리가 나자빠져서 죽어 있더란 말입니다. 총 맞은 자리도 없고 멀쩡한 놈인데…… 그, 그기이 다, 허 참 그기이 다 음양의 이치 아니겄소?”

“……?”

평산은 멀뚱멀뚱 강포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고라노 조차 짝이 있어 서로의 빈자리와 죽음을 슬퍼하며 함께 하는데 하물며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은 오죽할까?

이 대목은 장차 강포수와 귀녀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복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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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7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5장 풋사랑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으나 서분이는 이튿날 해 질 무렵 죽었다. 거적에 싼 조그마한 관이 집 밖으로 나간 뒤 용이는 울타리 옆에서 울고 있는 치수를 보았다. 그때 치수의 나이 열 살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용이는 치수가 때려도 엄마가 타이른 대로 그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치수는 용이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월선이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못났다고 흉을 보았고 짠보(울보)라고 놀려대었다.

돌이는 사랑의 돌담 옆에 엎드려 풀을 뽑고 있었다.


*최치수가 짝사랑한 이용이 누이, 서분이



(최치수)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을 용이 놈은 잘 알고 있지요. 그놈이 글을 배웠더라면 시인이 되었을 게고 말을 타고 창을 들었으면 앞장섰을 게고 부모 묘소에 벌초할 때마다 머리카락에까지 울음이 맺히고 여인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그렇지요, 복 많은 이 땅의 농부요.”

토지 2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최치수가 인정한 복 많은 이 땅의 농부,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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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6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권/ 4장 하늘과 숲이

나뭇잎에 찢겨진 조각난 하늘은 새파랗게 보였다.

깊은 골짜기 서늘한 곳으로 들어간 용이는 바위 아래 펑퍼짐한 자리에 가서 드러눕는다. 삽삽한 나뭇잎 썩은 내음이 물기를 머금고 콧가에 와닿았다.

(용이) ‘와 이리 심이 빠지노. 죽을 것만 같고나. ’

용이는 흙 속으로 자기 몸뚱어리가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둠이 덮쳐 씌우듯이 내려왔다. 그 어둠 속으로 흐미한 아주 흐미한 빛이 한 줄기, 그것은 광명이기보다 슬픔과 원한의 파아란 빛줄기였다.

‘불쌍한 것!’

토지 1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월선이를 떠나보낸 용이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슬픔에 휩싸여 흙 속으로 자기 몸뚱어리가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용이
사랑하는 여인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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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5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3장 실패(강포수 섭외 실패)

“삯이고 돈이고 간에 나는 매이는 기이 싫소.”

“평생 매여 살라는 것도 아니고 한두 달, 그것도 매여 사는 게 아니란 말일세. 자네는 사냥 솜씨 본때를 봬주고 요량을 가르쳐주면 될 거 아닌가.”

“은금보화를 준다 캐도 싫구마요. 내 편한 대로 살라누마요.”

“이런 답답하고 어리석은 위인을 봤나.”

평산은 밤새껏 설득하였으나 강포수는 고집을 풀지 않았다. 화가 난 평산은 삼수가 뒷간에 가고 없는 사이 귀녀의 금가락지를 들먹이며 협박까지 했으나 강포수는 요지부동이었다.

토지 1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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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4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2장 윤씨의 비밀(김개주)

다음 날 문의원은 길을 떠나 그 당시 천은사에 있는 우관선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백일기도를 하는 윤씨부인을 겁탈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관선사의 실제(實弟)김개주라는 것이었다. 중인 출신의 김개주는 야심만만한 청년으로서 문의원이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놀라움을 그 자신 감당할 수 없었다. 윤씨부인이 왔을 때 김개주도 공교롭게 형을 찾아 휴양 와 있었다는 것이다.

“죽일 놈! 그렇게 썩은 놈인 줄 몰랐구나.”

우관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어디 갔어! 그놈이 어디 갔느냐 말이다!”

“죄를 범한 놈이 여기 남아 있겠는가?”

토지 1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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