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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6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권/ 4장 하늘과 숲이

나뭇잎에 찢겨진 조각난 하늘은 새파랗게 보였다.

깊은 골짜기 서늘한 곳으로 들어간 용이는 바위 아래 펑퍼짐한 자리에 가서 드러눕는다. 삽삽한 나뭇잎 썩은 내음이 물기를 머금고 콧가에 와닿았다.

(용이) ‘와 이리 심이 빠지노. 죽을 것만 같고나. ’

용이는 흙 속으로 자기 몸뚱어리가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둠이 덮쳐 씌우듯이 내려왔다. 그 어둠 속으로 흐미한 아주 흐미한 빛이 한 줄기, 그것은 광명이기보다 슬픔과 원한의 파아란 빛줄기였다.

‘불쌍한 것!’

토지 1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월선이를 떠나보낸 용이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슬픔에 휩싸여 흙 속으로 자기 몸뚱어리가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용이
사랑하는 여인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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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 도전 14일차/ 박경리의 토지 1부 2편/ 1장 사라진 여자(월선)

최참판댁에서 나온 용이는 곧장 읍내로 떠났다. 중도에서 나룻배를 탄 그는 일찍 읍내에 닿았다. 읍내에 내려서는 순간 용이는 까닭 없이 마음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 꼭 일어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 볼 것을 보러 가는지 모르겄다. ’

월선이 다른 남자의 차지가 됐을지 모른다는 환각이 눈앞을 막았다.

‘천하없이도 그럴 리는 없다. 나는 월선이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께. 산천이 변했으믄 변했지……’

마음속에 다져둔 생각, 월선이를 데리고 어디든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풀쑥 솟았다.

‘구천이는 상전아씨도 데리고 도망가지 않았나. 나 없다고 여편네가 못 사까. ’

그러나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일이 있었다.

‘예로 만난 가숙을 박대하믄 못쓰네라. 여자란 남자 하기 탓이다. 모르는 거는 가르쳐가믄서. ’

강청댁에게 장가들어 정을 못 붙였을 때 모친이 타이른 말이었다. 숨을 거둘 때도 부모 멧상 들 가숙을 박대하지 말라는 것이 유언이었다.

‘내가 떠나믄 부모 기일은 뉘가 모실 기며……’

용이 눈에 눈물이 글씬 돌았다.


(중략)


“그 계집이 자네를 버리고 갔구마.”

침을 뱉어 담배를 축이면서 노파가 말했다.

“아, 아니오. 그것도 아니오.”

하는데 용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내가 다 알지러. 사나아대장부가 눈에 눈물이 나는데 아니라 카겄나?”

시체를 쪼아먹는 뫼까마귀같이 노파가 남의 슬픔을 쪼아먹듯 웃었다.

“정이란 더러운 게지.”

담배에 불을 댕겨 뻑뻑 피운다. 합죽한 입속에 이가 남아 있었던지 물부리에 이빨 부딪는 소리를 내며,

“잊어부리는 기이 상수네라. 또 세월이 가믄 잊어지는 기고. 그래저래 한세상을 살아보믄 눈앞에 보이는 거는 북망산천, 죽네 사네 하는 것도 젊었일 적의 한때 얘기 아니가.

토지 1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박경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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